2023년 회고록을 개인적인 사유로 원하는 날짜에 작성을 못해 스킵하고 오랜만에 1년을 돌이켜보는 회고록을 작성해 본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내가 살면서 가장 최악으로 보낸 1년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2024년을 마무리하는 회고록을 작성하면서 나쁜 기억과 감정, 나쁜 일 모두 다 훨훨 날아가버리고
2025년에는 행복하고 평안하고 감사한 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회고록을 작성해 본다.
3년 차 개발자의 개발 생활
개발자로 첫 회사에 취업하여 다닌 기간이 9개월, 지금 회사로 이직하여 재직한 기간이 벌써 1년 7개월이다.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한 지 벌써 2년 4개월째이다.
만으로는 3년이 되지 않았고 만 3년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1년차라고 말하고 싶다!!ㅋㅋㅋㅋ
실력 말해 뭐해인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인프런, 원티드 프리온보딩, 개발 서적 등을 가지고 짬짬히 시간을 내어서 공부를 했다.
회사에서 JPA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냥 필요할 때 마다 검색하면서 사용하기 보다 하이버네이트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고 싶어서 예전에 구매해 두었던 JPA 강의를 들었다.
마지막 queryDsl을 완강하지 못했는데 2025년에 JPA 공부를 다시 하는 마음으로 강의를 다 듣고, 구매했던 책으로 추가 공부를 해보려고한다.

강의와 책으로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은 블로그나 깃헙에 정리하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열심히 PR을 날리며, 이슈를 해결하고 머지머지 놀이를 했다.


뭔가 공부하면서 자꾸 예전에 공부했던 걸 까먹는 기분이라 2024년 마지막에 접어들면서 기본기를 다시 탄탄히 하고 싶은 마음에 자바의 정석을 뿌시는 중이다.
사실 쌓인 기간만큼 내 실력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 실력과 배움에 대한 갈증이 늘 있다.
퇴근 후 개발 서적을 읽거나 강의를 듣거나 원티드에서 무료로 제공해 주는 프리온보딩 주제가 마음에 들면 신청하여 세션을 듣는데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하는 만큼 실력이 올라가고 있는가 늘 의문이 들었다.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고 공부한 걸 가지고 토이 프로젝트를 해봐야지 생각을 하는데
늘 부족한 게 있다고 생각하니 쉽게 토이 프로젝트 시작을 못했다.
늘 완벽을 추구하고 시작하려는 내 성향 때문일까?
뭔가 자꾸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뭐가 문제인지 멈춰서 돌이켜보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아 내 실력이 너무 부족한데 개발자를 하겠다고 한 걸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생각해 보면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면서 '아 왜 나는 이것밖에 못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게 내 자신감과 자존감을 얼마나 깎아내리는 지도 모르는 체 스스로 자꾸 공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를 믿어주고 내 속도에 맞춰서 그냥 열심히 묵묵하게 하면 되는데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자책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와서 한 순간에 이런 내 성향을 고치기는 어렵겠지만
매일매일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내 속도에 맞춰 나를 믿어주면서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2025년에는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마음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완벽을 꿈꾸지만 사실 완벽이라는 것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너무 완벽하게 살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최선을 다해보자
그러고 나서 나를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고 부족한 부분은 그다음에 더 채워가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경험한 것들이 앞으로 살아갈 모든 순간에 작은 발판이 되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25년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며 화이팅!
회사의 어려움
우리 회사만 어려운 건 아니겠지만 회사가 정말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투자가 될 듯 말 듯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자금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자금 문제 때문에 많은 직원이 퇴사를 하게 되었다.
정말 극 소수의 인원만이 남아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사람에 비해 처리해야 할 업무는 많으니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자금이 없이 오랜 시간 열정만으로 버티는 것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정신적으로도 고통이 딸려왔다.
버티고 버티면서 중간에 감사하게 팁스 선정이 되어서 연구비를 받을 수 있었는데 협약 완료되자마자 계엄 선포로 인해 연구비 집행이 설상가상 막혀버렸다.
그렇다 또 버텨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사용했던 사용자를 통해서 입소문이 난 건지 사용자는 조금씩 있는 상황에서 자금 문제가 있다 보니 정말 너무 어려운 시간이다.
내년에 팁스를 통해서 연구비도 받고 투자를 하겠다는 기업들이 움직일 텐데 그 시간까지 버티는 게 사실상 너무 힘든 시간인 거 같다.
힘든 시간이 곧 끝날 거라는 생각으로 1년이라는 시간을 버텼는데 2-3개월 버티는게 뭐가 문제일까 싶다가도 사람이 나약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생각에 끝없이 잠식이 되어버리는 거 같다.
나는 나와 직원들이 만든 서비스를 믿는다.
누군가에게는 무모해 보이기도 미련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제대로 된 홍보를 하고 더 많은 사용자가 이용하는 것을 꼭 보고 싶다.
내년에는 제발 투자도 잘되고, 팁스 선정으로 받을 수 있는 연구비도 받아 급한 불은 끄고 제대로 한 번만 다시 달려보고 싶다.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일어나서 기업과 서비스를 더 멋지게 키워보고 싶다.

가족의 아픔 그리고 이별
1) 엄마의 쓰러짐
정확히 1월 3일 엄마가 쓰러졌다고 연락이 왔다.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이동하고 병원에서 검사하는 중간에 2번이나 심정지가 오셨다.
의사 선생님이 심정지가 2번이나 오고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하셨다.
그때의 몸상태에서 심정지가 1번 더 오면 돌아가실 수 있다는 말에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걸까? 정말 감사하게도 엄마가 살아나셨다.
살아나신 후에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상태가 호전되셔서 일반 병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거동이나 다른 부분들을 혼자 하시기는 힘든 상황이라 병원에서는 간병인을 쓰거나 보호자가 1명 상주해야 한다고 해서 내가 거의 한 달을 병원에서 지냈다. 동생도 중간중간 쉬라고 와서 대신 잠을 자주기도 했다.
회사에는 사정을 말씀드리니 보스께서 가족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괜찮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하게도 보호자로 병원에 있을 수 있었다.
엄마가 정신도 많이 돌아오시고 몸이 조금 회복되시니 퇴원을 너무 원하셔서 의사 선생님과 얘기를 했었다.
의사 선생님은 수치가 너무 높은 게 있어 수치가 조금 더 가라앉은 후에 퇴원을 하자고 말씀해 주셔서 수치가 좀 가라 앉은 후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몸이 좋지는 않으시지만 이렇게 살아계심에 감사하다.
더는 아프지 마시고 몸 생각하시면서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2) 외할머니와 이별
외할머니께서는 중풍이 있으셔서 늘 침대에 누워계셨다.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큰 이모가 20년 넘게 돌봐주셨다.
10월 중순쯤 외할머니께서 식사를 전혀 못하시고 기저귀를 갈아드리다가 골반뼈가 골절이 되어서 급하게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찾았다. 올해 의대 관련 이슈때문에 응급실을 가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 근처에 있는 병원에서 다 거절해서 서울이나 다른 지방까지 갈뻔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 집 근처에 있는 화홍병원에 와도 된다고 해서 그쪽으로 입원을 하셨다.
입원 후 검사를 했을 때 A형 독감이 있으셔서 격리되는 응급실로 들어가 계셨고
설상가상 뇌경색과 폐렴까지 오셔서 뼈 수술을 하는 것은 이미 나이도 있으시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하시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해서 고민하다 수술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큰 이모께 전해 들었다.
그렇게 1주, 2주 정도 지났을 까 종종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찾아가고 큰 이모의 말동무를 해드리다가 회사에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예린아 할머니 돌아가셨어'
어릴 때부터 할머니 몸이 아프신 것도 알았고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상태가 너무 안 좋으셔서 곧 우리와 이별할 것도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온몸이 사시나무가 떨리듯이 덜덜 떨었다.
나는 부랴부랴 보스께 말씀드리고 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동생에게 전달해 주고 옷을 갈아입고 챙겨서 병원으로 갔다.
병상에서 눈을 감으신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할머니 영정 사진을 뽑아서 수원 연화장으로 이동했다.
할머니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게 되어 2일만 장례를 치렀다.
고등학생 이후로 가족 장례는 처음이었다.
화장을 하고 발인을 하고 유골을 뿌리는 모든 과정까지 성인이 되어 가장 가까운 가족의 장례를 처음 치러보니
생각보다 슬퍼할 시간보다 챙기고 처리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게 너무 속상했고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손녀딸인 나도 이렇게 먹먹하고 슬픈데 자식인 엄마와 이모, 삼촌들은 얼마나 슬프실까..
특히 20년 넘게 할머니를 돌봐주신 큰 이모가 얼마나 마음의 공허하고 슬프실지 사실 이렇게 표현을 하는 게 맞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고 그냥 가족들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3) 큰 이모의 수술
나에게는 누구보다 엄마 같은 큰 이모가 12월에 수술을 하게 되셨다.
올해 첫눈이 폭설처럼 내려 그 눈에 이모가 넘어지셨고 어깨 근육이 파열되셔서 수술을 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음도 힘드실 텐데 몸까지 다치셔서 너무 속상했다.
입원 날, 수술 당일에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씀에 연락을 드렸고
수술하신 다음 날부터 퇴근하고 이모 병원에 가서 말동무해드리고 팔 쓰기 어려우신 부분은 도와드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수술은 잘되어서 경과는 좋았고 크리스마스이브날 퇴원을 하셨다.
아직까지 팔은 잘 못쓰시지만 그래도 수술이 잘되어서 너무 감사하다.
문득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큰 이모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엄청 슬픈 날이 있었다.
큰이모가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마무리
회고록에 작성하는 일보다 실제로 겪은 일은 더 많지만, 큰 주제로 묶을 수 있는 부분만 담아서 작성해 보았다.
이렇게 작성하면서 생각해 보니 진짜 힘든 1년을 보냈구나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구나 느낄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걱정해 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나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이 베풀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빡빡하게 굴기보다 조금 더 유연하고 여유롭게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스스로를 너무 엄격하게 대하지 말고 칭찬과 응원, 위로를 해주면서 내가 지치지 않고 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삶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살아가보려 한다.
올해 이렇게 힘들게 보내고 마무리를 하겠지만, 2025년 새해에는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회사의 자금 문제와 모든 상황이 다 풀려 필요한 이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기업이 되길 바란다.
나의 생각과 인성이 한층 더 성장하고 개발 실력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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